나는 멈춘 시계다. 처음에는 분명히 돌아갔다. 내 안에서 톱니바퀴가 돌고, 바늘이 움직이며 시간이 흘러갔다. 사람들은 내가 시간을 알려주고, 하루를 계획하며 나를 의지했다. 나는 그들의 일상을 함께했다. 중요한 약속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었고, 다가오는 기념일을, 한 시간 한 시간을 헤아리며 그들에게 알렸다. 내 바늘은 그들의 삶을 기록하며 끊임없이 움직였다.
하지만 어느 날, 나는 멈췄다. 누군가 내 속을 열고, 나를 고쳐보려 했지만, 그 후로 내 바늘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. 그 순간부터 나는 단순히 시간이 흐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. 내 시계는 멈췄지만, 사람들은 여전히 내 존재를 기억하며 손목을 돌리거나, 벽에 달린 내 모습을 떠올린다.
사람들은 나를 떠나갔다. 이제는 더 이상 내 시간을 의지하지 않는다. 스마트폰과 전자기기들이 시간을 대신하며, 내가 있던 자리는 한가롭게 흘러가는 공기 속에 묻혀갔다. 아무도 내 바늘을 돌아가게 하려 하지 않는다. 나에게는 그저 멈춰버린 시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.
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. 멈춘 시계 속에서도 내가 가진 시간은 여전히 소중하다. 내가 멈춘 순간, 그 시각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. 어떤 사람은 그 시간에 중요한 결정을 내렸고, 또 다른 사람은 그 순간에 사랑을 고백했다. 그때의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지만, 그 시간에 담긴 모든 순간들은 내 속에서 영원히 멈춰 있다. 나는 멈췄지만, 그 기억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.
가끔,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한 번 쳐다볼 때가 있다. 그들이 손목을 스치는 순간, 나는 그들이 기억하는 그 시각에 대해 생각한다. 내 바늘이 멈춘 그 순간, 그들에게는 무엇이 있었을까? 그들이 내 시계를 바라볼 때, 그들은 어떤 순간을 떠올릴까?
나는 멈춘 시계다. 시간이 더 이상 흐르지 않지만, 내 속에는 여전히 시간이 존재한다. 멈춰진 그 시간 속에 나는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. 지나간 사람들의 하루를, 그들의 중요한 순간들을 기억하며, 나는 여전히 그 시간을 지키고 있다. 비록 나는 멈췄지만, 내 안에는 흐르는 시간이 있다.